1. 검열에 대한 우리의 입장

1.1. 백서를 발간하며

불과 5∼6년 동안에 우리 사회는 새로운 미디어 매체의 출현을 경험하고 있다. 이 새로운 미디어는 개인과 개인들이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정보통신혁명은 단지 산업이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만 논의되어질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들간을 가로막고 있던 단절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며, 인터넷을 비롯한 전지구적 네트워크의 정신 또한 바로 여기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거리와 시간의 차이로 인해 흩어지고 단절되었던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은 비로소 새로운 수단의 출현을 통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보의 공유를 통한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정보통신공간은 또하나의 현실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전자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 받고, 뉴스를 읽는다. 통신이용자들은 이러한 통신공간의 편리함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생활공간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만나고 있으며,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공간의 여러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통신이용자들도 그러한 기대를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신공간을 통해 여러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기를 희망하며, 새로운 만남을 기대한다.

언젠가부터 통신공간에 검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실정법의 무리한 적용과 통신공간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검열과 인신구속행위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흐름의 부당성을 알려내고 통신공간에 대한 현실분석과 대안마련을 위해 <정보통신 검열철폐를 위한 시민연대(시민연대)>를 구성하였다. 이제 우리 활동의 첫 열매로 지금까지 국가기구와 상업통신망사업자에 의해 진행된 일련의 검열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려 한다.

검열이란 '특정한 윤리관과 사상의 관철을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강제적 수단을 통하여 제한하는 모든 감시 및 통제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시민연대>는 이러한 모든 형태의 검열기구 및 형태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이것은 정보통신공간에서의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이다. 또한 <시민연대>는 앞으로 통신공간에서 다음의 정보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시민운동을 계속 펼쳐나갈 것이다.

첫째, 보편적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정보통신 매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보통신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곧 정보민주주의 자체로부터 제외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실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듯이, 통신공간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 강제적인 검열과 삭제행위는 일반 통신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단지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는 이유만로 처벌받는 일은 원칙적으로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통신공간은 이미 반론과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해결의 전형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강제적인 검열행위를 통해 통신이용자들의 건전한 상식과 판단행위를 재단하려는 것은 국민을 우매화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통신공간에서 개인의 신상정보는 끊임없이 유출되고 있으며, 일상적인 감시의 눈초리는 대화방, 게시판, 토론실을 응시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과 국가보안법은 언제든지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임의적으로 유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며, 이용약관은 온라인 업체가 모니터링이라는 이름으로 이용자들을 감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러한 감시와 개인정보 유출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정보통신을 이용하여 개인들이 자유로운 발언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각 이용자 스스로 자체검열을 실시하게 하는 감시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리고 만다.

<시민연대>는 이러한 정보기본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기구와 행위에도 맞서 싸워나갈 것이며 우리의 원칙에 동의하는 어떠한 사람들과도 연대해나갈 것이다.

1.2. 검열은 국민을 보호하는가

1.2.1.검열은 국민을 보호하는가

검열은 항상 음란물로부터의 청소년과 여성 보호를 그 선두로 하여 주장되고 진행된다. 영화와 서적에 대한 검열이 그랬었고, 현재 진행되는 비디오에 대한 검열이 그렇고, 만화에 대해서도 그런 이유와 논리로 검열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항상 검열의 선두에는 음란물 차단이 앞장서고 있고, 미국에서 올해 논란이 되었던 통신품위법 또한 마찬가지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되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간 여성계에서 조차도 검열에 대하여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반여성적인 텍스트에 맞설 수 있는 유용한 방어막정도로 판단해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검열이 늘 내세우는 '음란물 단속'은 단지 과장된 광고문안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실제로 검열은 여성과 청소년, 사회적 약자, 일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사회체제의 강제적인 안정과 사회정치적인 일탈 방지를 목적으로 그들의 각 권리를 침해하기 위해 연출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들을 억압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검열이 내세우는 '음란물 차단'이라고 하는 과장 광고와, 광고 밑에 조그맣게 새겨놓고 있는 '불순한 사상으로부터 국가의 안위 보호'라는 경고문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검열은 필요악이다' 혹은 '올바른 검열을 구성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검열에 대한 대안은 완전한 검열철폐일 뿐, 결코 검열의 안정적 혹은 효과적 재구성이 아님을 밝히려 한다.

1.2.3. 검열은 제도가 아닌 사회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화적으로 폐쇄적이고 정치적으로 비민주적인 국가일수록 검열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그것은 선진국에 비해 제 3세계 국가들에서 더 심한 편이며, 특히 정보통신에 있어서는, 정보통신을 국민 일반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력이 형성되어 있으나 정치적으로 후진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들에서 뚜렷하게 그 특성이 나타난다(예전에 4마리 용으로 불리던 국가는 거의 이에 해당하며, 한국과 싱가포르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때 검열은 주로 국민들에 대한 우매화정책의 주요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정치적 발언을 억누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즉, 검열의 시작은 문제성 있는 정보 때문이 아니라, 자국 국민의 외부 정보에 대한 차단과 정치적 무지의 확산을 위해 실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검열을 단지 제도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된다. '공연윤리위원회'나 '정보윤리위원회' 등의 기관이나, '영화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이 없어진다고 해서, 혹은 수정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검열기관의 구성원이 바뀐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더욱 아닌 것이다. 검열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검열의 내용과 형식이 아니라 검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함의를 읽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1. 검열은 성상품 유통의 합법화를 보장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검열의 1차적인 효과는 국민 일반에 대한 사회일탈적인 개별 정보의 차단이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검열의 효과는 '은폐'이다. 검열은 '음란물 때문에 성폭력이 일어나며, 좌익사범들의 유인물 때문에 국가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가?

검열에서 음란물의 개념이 반여성적인 텍스트를 의미하지 않는 이상, 검열로 청소년과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단지 검열은 사회적인 보수주의자들(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검열에서 언급되는 음란물은 '노출의 한계'만을 문제삼을 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 폭력성의 의미와 강도는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사회정치적인 문제로서의 여성문제를 '음란물'의 문제로 은폐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인 것이다. 더 나아가 검열은 음란물을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합법적인 성상품을 유통시키기 위한 가장 유용한 틀이 된다. 즉, 검열은 성(性)을 '윤리적인 성'과 '음란물'로 이중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며, 성상품은 그 사이를 오가며 합법적으로 유통된다. 검열은 가부장제와 여성의 성상품화, 반여성적인 텍스트의 유통을 합법적으로 유지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은폐물인 것이다.

오히려 지속적인 문제는 남성중심적인 법률제도와 사회정치적인 구조와 담론이다. 그리고 검열은 바로 그러한 기반 위에서 진행하면서 근본적인 여성보호를 회피하는 수단일 뿐인 것이다. 다시 한번 묻는다. 과연 검열은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인가?

2. 검열은 그 보호의 대상을 대단히 우매하다고 전제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을 우매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정보통신 미디어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으로 항상 제시되는 것이 바로 '쌍방향성'이다. 기존의 미디어와는 다르게 정보의 확산과 수용에 있어서 일방향적이지 않고, 언제나 서로간의 소통을 보장하므로 해서 늘 비판과 비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 바로 정보통신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에서의 검열은 국민 일반이 스스로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성년자의 법적 권한은 거의 '한정치산자'에 준하며, 또한 남한내 모든 정보(성인용이라 할지라도)는 미성년자를 기준으로 검열된다. 결국 똑똑한 국가 기관이 나서서 한정치산자에 가까운 국민들을 검열을 통해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검열의 조건이다.

정보통신 공간은 그동안 도대체 '토론'이라는 것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타인들 앞에서 피력하고 논쟁이라는 것을 시작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열은 결코 이러한 비판과 논쟁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또다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토론의 자유를 여기서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검열의 목적이 올바른 통신문화보급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최근 통신공간들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체포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이용자들에 의한 자정 노력조차 공권력에 빛을 바래 무산되어 버리고, 논리적인 주장이나 논쟁이 사라지고 있으며 오히려 인신공격과 말장난만 쏟아놓는 통로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검열의 강화는, 이제는 통신이용자 스스로의 '자체검열'의 강화로 이어지고, 결국 정보통신공간을 토론이 아닌 말 그대로의 '쓰레기 같은 배설'만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공권력이 계속 토론에 개입하고, 발언에 따라 구속되는 등 이러한 검열이 계속 되는 이상 국민간의 자유로운 토론이라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때 토론은 마치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는 학급회의와 같다. 아무도 선생님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으며, 교육에 대한 문제도, 심지어는 반장의 문제에 대해서조차 언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검열을 통해 올바른 통신문화를 창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국민은 이로 인해 토론조차 국가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초등학생으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 정보통신에서의 검열은 미리 전제하였던 '한정치산자'격의 국민을 새롭게 구성한다.

3. 검열은 언제나 강력한 중앙권력의 기반 위에 가능할 뿐 아니라, 또한 중앙권력(구체적, 추상적)을 지속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정보통신상에 올린 '글'을 이유로 경찰에 구속되고 재판을 받은 사례는 국가보안법과 선거법 밖에 없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검열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 분명히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강력한 중앙정부는 검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국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우며, 지역적인 자치체제를 존중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검열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국민의 의견에 잣대를 부여할 검열의 기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적인 나라일수록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국가에서 보장해준다.

검열은 그 자체의 존립기반을 위해 한편으로는 강력한 중앙권력 자체를 끊임없이 필요하도록 요구하며, 현재의 중앙권력을 이루고 있는 정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검열은 그 존재자체로 끊임없이 '분권화, 민권화'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현정권을 유지해야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검열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 자체로 이미 비민주적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보통신 검열에 의해 피해받은 자가 모조리 '비판적인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국민'이라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바로 검열을 진행하는 자들의 목적자체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또 검열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다시 한번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검열이라는 것을 진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민주적인 국가체제에서 강력한 중앙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자들에 의해 검열이 진행된다고 했을 때, 그들에 의해 진행되는 검열에서는 약자와 소수는 끊임없이 소외되고 배제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소수와 약자를 '고려'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검열이 결코 소수나 약자가 '주체'가 되어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4.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모든 표현물이 음란물로 도배될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이다.

검열은 문화적 패배주의이다. 현재까지 비합법적으로 유통되던 음란물(일단 그들이 말하는 음란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외로 한다 할지라도)이 합법화된다고 해서 모든 표현물이 음란물로 뒤덮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곧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음란물'에 굶주려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만일 지금 당장이라도 포르노를 구입하려고 한다면 청계천 2층에 올라가서 인상 굵은 아저씨들이 와서 '좋은 비디오 있다'고 권할 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 아저씨들은 청소년을 성인과 구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청소년들을 가장 적극적인 구매자로 판단하고 집요하게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르노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과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강화로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청소년에게 불법적으로 유통시키는 경우 중죄로 처벌하고 있는 등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고, 그것은 폭넓은 표현의 자유와 성폭력을 구분함으로 해서, 현재 성인의 헌법적 알권리조차 박탈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하게 성폭력을 방지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적극적인 방법을 실시하지 않고 검열만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행위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으로 올바른 문화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억지주장인 것이다.

1.3.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 만의 것이 아니다.

군부독재로 상징되던 70년대와 80년대 모일간지에서는 당시 군부에 의한 검열에 반대하는 뜻에서 독자들의 지지광고만이 가득 차 있는 백지의 하얀 신문을 발행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90년도 중반에 온라인 서비스에서는 이용자들이 하얀 리본[▶◀]을 머리말에 붙여 글을 올리고 있다. 당시 많은 글들이 검열에 의해 잘려나갔던 것처럼 지금 통신에서도 이용자의 글들이 무자비하게 잘려나가고 있으며, 또한 기자들이 감히 언론의 자유를 넘보다 끌려갔던 것처럼 현재 많은 통신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넘보다 끌려가고 있다. 단지, 생각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 마치 민주의 척도인 것처럼 주장되었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결코 언론사 만의 것으로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언론장사로 재벌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재벌의 언론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신문사, 방송사에만 그 자유가 국한된다면 그것은 결국 힘있는 자의 자유, 가진 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 이상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이제 모든 국민의 자유로 환원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란 국민 개개인의 말할 권리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말할 권리가 언론의 적극적 자유라면, 알권리는 언론의 소극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권리가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이에 대하여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을 권리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할 때 우리는 또한 알권리조차 박탈당하고 만다.

국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정보를 주고받고, 의견을 나누는 행위와 공간을 보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그 출발이고 토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