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음란폭력(성)조장매체 대책시민협의회'의 활동은 정당한가?

1. 들어가며   

해만 해도 소설가 장정일과 만화가 이현세가 음란물 제조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검찰에 소환당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나쁜 영화>는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각각 수입불가와 등급보류판정을 받았다. 최근 개최된 인권영화제는 '심의'를 문제삼는 관할구청과 문체부, 경찰력의 공조로 불가피하게 조기폐막하였고, 퀴어영화제는 막도 올려보지 못한채 무기한 연기되었다. 소위 문민시대에 문화예술계에 불어닥치는 공안정국의 바람은 '우리 시대 표현의 자유는 존재하는가'라는 회의적이고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고색창연하지만 당연한 인간의 권리는 국가의 일상적 검열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으며, 사회의 전반적 보수회귀분위기를 틈탄 보수적 시민단체들은 청소년의 보호와 미풍양속의 수호라는 명분아래 국가검열의 정당성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지난 해 헌법재판소가 '영화 사전심의'가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검열임을 명백히 확인하였을 때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지난한 실천운동가들의 싸움은 그 결실을 맺은 듯 보였고, 이 판결이 영화라는 대중매체에서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가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바라마지 않았다. 정확히 일년이 지난 현재, 영화매체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재결정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문학, 만화, 통신등 전 대중매체를 망라한 무차별적인 것이 되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그리고 여전히 '검열'이다. 과거 국가권력이 검열의 정당화 도구로 이용한 것이 주로 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 이적성등 사상적인 표현을 이유로 한 것[1]이었다면, 지금의 검열근거는 '음란물의 규제'로 집중된다는 점과 검열의 주체가 국가권력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검열의 새로운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자본의 검열과 함께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잘못된 시민사회운동이다. 실질적인 검열의 주체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검열옹호론을 펼치고 있는 시민운동단체가 있고 그러한 단체의 활동이 국가와 자본검열에 버금가는 표현행위의 위축과 침해를 가져온다면, 그 활동은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2.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의 활동은 정당한가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이하 음대협)[2]'와 음대협 활동의 실질적 중심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건전보수'를 자처하면서 도덕성회복운동을 벌여오고 있고 '청소년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거대언론재벌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투쟁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음대협은 지난 1990년부터 약 8년간 스포츠신문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스포츠지 광고물의 음란성에 대한 항의운동을 벌여왔으며, 94년에는 각 스포츠지로 하여금 사과문을 게재토록 하고, 광고주에게 불매운동 등의 압력을 통해 광고중단을 결정하도록 하는등 수용자운동으로서는 보기드문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3].

스포츠신문을 상대로 한 음대협 활동의 긍정적 측면, 즉 어떠한 매체보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받고 있지만, 그 자신들은 비판의 대상조차되지 않았던 거대신문사들을 시민단체의 여론운동에 굴복하게 한 점 등에도 불구하고, 청교도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한 '대중매체의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음대협과 기윤실의 주장은 하나의 견해 이상이 아닌 경우가 많았고, 그 편협한 시각과 왜곡된 주장으로인한 결과는 득보다는 해악이 훨씬 컸다. 그간 음대협은 매체를 둘러싼 음란성시비의 일방당사자가 되어, '음란조장매체'를 만들어 사고 판 '음란물조장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엄벌에 처할 것을 주장해왔다. 음란연극 <미란다>를 고발하여 사법적 심판을 받게 하였고, 음란소설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를 중형에 처할 것을 탄원했으며, 펜트하우스 한국판 발행을 저지했고, 플레이보이 영상채널도입을 반대했으며, 백화점내 섹스숍 추방 등의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녕 음대협과 기윤실은, 눈에 보이는 몇몇 '음란조장매체'를 처벌하고 불매한다고 하여 건강한 사회가 조성되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보다는 음란한 환경을 가능하게 한 부도덕한 권력의 부정과 부패가, 그리고 다양성과 개성을 말살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환경이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음대협과 그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기윤실의 활동목적과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각종 공청회나 토론회에서 보이는 기윤실의 태도는 명백한 입장의 차이만을 확인하게 할 뿐이고, 대강의 합의 수준에 이르기에도 너무나 편협하고 완고한 주장만을 되풀이한다[4]. 우리 사회 대표적 '건전보수'를 자처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실질적으로 여론을 움직이는데 힘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 왜곡된 편견에 맞서 진정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윤실과 음대협의 주장은 다음의 가지로 요약될 있다[5].

·돈을 벌기 위해 성을 이용하는 상업주의를 배격한다. 일간신문, 스포츠신문 등의 선정적 광고나 만화, 영화, 서적등 대중매체를 통한 음란물의 유포에 대해 고발, 불매운동 등을 벌여 나간다.

·성적인 자유를 인간성 해방으로 보는 이데올로기는 전통적 절대윤리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혼전성관계, 미성년자들의 성적인 자유, 동성연애 등을 옹호하는 주장은 결혼한 부부끼리만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윤리관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기윤실의 모든 활동은 크게 '성상품화반대'와 '전통적 윤리관의 복원'이라는 가지 '대의'속에서 진행된다[6].

(1) 음란물[7]에 대한 주장

음란물의 범람으로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더욱 타락할 것이며, 강간등 성범죄도 증가할 것이다. 청소년들의 정신과 윤리의식은 심각하게 오염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가정이 파괴되고,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만연할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음란물이라는 표현물과 에이즈라는 질병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는 억지 도식은 제쳐두고라도 이런 주장은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주장일 뿐이다. 음란물의 영향에 대한 어떠한 실험결과도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섣불리 그러한 실험결과를 성표현물의 규제근거로 삼을 수도 없다.

음란물이 인간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규모적 검증을 시도한 여러 국가에서 이미 '음란물에 대한 판단은 확고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복잡한 양상이 혼재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8]. 기윤실의 음란물 유해론 주장이 인간의 성행동이 가지는 수많은 개인적 변수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외에도 그것을 근거로 음란물에 대한 공권력 개입을 쉽게 정당화하고 있다는데 더욱 심각한 오류가 있다.

어떤 예술작품 또는 예술 표현도 청소년들의 성욕을 자극할 권리는 없으며, 예술작품이라 하더라도 청소년들을 망치는 것이면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예술계와 우리 사회의 자율정화기능이 미미한 상황에서 공권력을 통한 법률을 통해 청소년과 사회를 보호하는 것은 최후의 방편이다.

강간등 성범죄가 증가하고 특히 청소년의 성적비행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이 그동안 음란물을 규제할 법률이 없었기 때문인가.

우리나라는 음란성기준(법조문에는 '음란'외에도 동일한 의미로 '미풍양속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등으로 표현된다)으로 성적 표현물을 규제하는 법률을 이미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형법상(음화등의 반포등죄)이다. 이외에도 각 매체별로 만화는 미성년자보호법과 청소년보호법, 영화는 영화진흥법, 비디오물에 대해서는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 그리고 공연장에 관해서는 공연법, 방송은 방송법이 있으며, 옥외광고물은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음란물을 포함하는 수출입금지물품에 대한 법률로는 관세법, 풍속영업소에서의 음란물반포 등에 대해서는 풍속영업의규제에관한법률등 수 많은 특별법이 있다.

이렇게 많은 법률이 있음에도 성범죄율이 감소되지 않는 것은 음란물 유해성의 근거없음과 더불어 음란물의 법적 규제가 실효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기윤실의 주장대로 법률로 성표현물을 규제하는 것이 최후의 방편이 되기 위해서는, 특히 그것이 범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법률의 개입으로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법익과 그로 인해 침해받는 개인적 법익 사이의 관계를 엄격하게 따져본 후에나 가능하다. 유해함에 대한 어떤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은채 성표현물의 무조건적 법률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전체 사회의 공익을 해치기에도 충분한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9]. 이와 관련하여 기윤실은 우리 헌법의 표현의 자유조항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어떤 예술작품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도 비도덕적이 될 특권이 없다. 예술작품을 가장한 음란물들이 도덕적으로 누군가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가하게 된다면 비도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이라는 차원에서 규제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제21조 4항)고 규정하고 있다. 즉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일정한 공적책임을 수반하는 권리임을 강조하였는데, 현대의 입헌주의제 국가의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란 이러한 공공복리와의 균형속에서 보장, 발전되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와 같은 개념은 불명확하여 사회의 가치관이나 윤리관에 따른 해석의 문제일 수밖에 없고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정도, 성숙도에 따라 의미는 유동적이다. 헌법이 표현의 자유에 공공성을 부여한 것은, 표현의 자유의 침해근거를 제시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제한의 한계사유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동시대가 공유하는 가치관에 따른 표현의 자유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성표현물에 대한 법률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보호라는 공익과의 조화를 성취할 수 있는 최후의 방편도 최선의 제도도 아님은 그간 법원에서 문제가 된 일련의 음란성기준판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의 한 판결[10]에서 법원은 "음란이라는 개념자체가 사회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이고도 유동적인 이고, 그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풍속·윤리·종교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추상적인 것이므로. . . 최종적인 판단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당해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이라 할 것이니, 음란성을 판단함에 있어 법관이 자신의 정서가 아닌 일반 보통인의 정서를 규준으로. . ." 라고하여 음란기준의 비고정성과, 현재의 법체계내에서는 음란성판별의 주체가 법관일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법관이 주체가 되어 일반인의 정서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지만, 문제된 표현물을 실제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법관이지 '평균적 감수성을 가진 보통인[11]'이 아니다. 결국에는 법관개인의 개인적 경험과 가치관에 따른 주관적이고 개별적 견해일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개 법관의 성적 감수성이 곧바로 우리 사회 보통인의 정서로 대치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성표현물에 대한 사법적 규제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라는 불확정 개념에 의존하여 비도덕성을 재단하려는 사법적 시도는, 사회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절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사회질서유지라는 공동선의 조화를 위한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것과,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공동체의 부단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단계정도로 인정하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하다. 법률로 규제하는 것은 결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도덕적 가치에 대한 것이라면, 개인의 자기 결정권에 맡겨지면 족한 것이다.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법률의 영역에서 합목적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다양한 반론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다.
 
 

(2) 성윤리에 대한 주장

기윤실의 주장이 다수의 지지를 받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성윤리의식에 중대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서 '사적인 영역의 성'을 '공적인 영역'으로 이끌어 내었고 성에 대한 수치심과 경외심, 이를 통한 절제와 존중보다는 충동에 따라 자유롭게 향유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은 본능적으로 감추고 싶은 것, 은밀한 것'이라는 특성 때문에 절제할 수 있는 것임에도 음란만화나 잡지, 그리고 도서들에서는 본성을 거스려 '성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꺼내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동성애와 근친상간등은 가장 서로 신뢰하고 순수해야 할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성적인 관계로 환치시킴으로써 인간질서를 파괴하는 반인륜적인 악행이다.

'성정치학'은 성과 관련한 일련의 규범과 금기를 깨뜨리는 것이 인간해방의 전제조건임을 밝히고 있으며,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야 할 성의 문제를 정치학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장소로 이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성'은 밀실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가? 과연 '성'은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면서 은밀히 그리고 수치스러움을 가지고 행해져야 할 그 무엇인가?

삶의 모든 영역이 더 이상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확연히 구분될 수 없는 것같이 성에 관한 모든 논의도 이제 광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적인 삶의 세계를 정치적 실천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성정치의 전략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의 공론화는 인간억압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적어도 기윤실의 주장처럼 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는 인간본성을 거스르는 것도 부끄러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들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에서 보여지듯이, 기윤실의 활동은 그 전제부터가 왜곡되어 있다. 즉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돼야하며 어떤 절대적 기준도 있을 수 없는 '문화'에 대해, 절대적인 기독교 윤리관에 입각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그것이 마치 현 한국사회가 준거로 삼아야 하는 타당하고 보편적인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윤실의 모든 활동의 이념적 근거로 자리잡고 있는 기독교적 윤리관은 각자 개인적 기준에 합당하게 삶을 영위해나가는 과정에서 선택될 수 있는 하나의 가치기준일 뿐이다.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유일한 하나의 사고틀로 해명하려는 시도나 모든 인간행동을 같은 그물에 얽어매려하는 획일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이제 유효하지 않으며, 다원성을 확보하지 못한 시민사회운동은 결국에는 그 존립기반인 대중의 지지또한 얻을 수 없다.



각주----------

1) 물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있는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그 위력을 전혀 상실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인천에서도 조기폐막된 인권영화제 상영작 <레드헌트, Red-Hunt>에 대해 경찰은 국가보안법상의 '이적성'을 문제삼아 영화제 중단을 강요하였고, 급기야 11월 4일에는 인권영화제를 주관한 인권운동사랑방의 대표 서준식씨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서울시경 보안수사대에 의해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 음대협에는 다음의 32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데, 대부분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가 주를 이루고 있다. 건강을위한시민의모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낮은울타리,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대한기독간호사회,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대한어머니회중앙연합회, 맑고향기롭게살아가기운동본부, 바른언론을위한시민연합, 보리방송모니터, 서울YMCA, 서울YWCA, 예수전도단, 우리동네기도회,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전국직장선교연합회, 청소년교육선교회, 청소년유해환경고발센타, 학생신앙운동,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한국기독교신도연맹,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대학인회, 한국기독학생회, 한국대학생선교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한국선명회, 한국에이즈연맹, 한국청소년사랑회, 한국장로협의회, 흥사단, 한국소비자연맹. 

3) 특히 기윤실의 실무책임자로 있는 손봉호 교수의 활약상은 가히 중세십자군의 성전을 연상케한다. 이와 관련한 최근의 활동만을 보면, 손 교수는 음대협의 공동대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위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수많은 지면과 방송을 통해 포르노와의 끝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4) 하나의 주장이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독재적으로 굴복시키지 않고도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으려면, 그 반대의견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전제로 한 비판이 가능해야 한다. 기윤실과 음대협 또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 기본권주체이지만, 주장의 무오류성을 가정하지 않는한 그들의 주장에 대한 어떤 비판도 경청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5) 이 부분은 95년도 음대협의 활동원칙과 방향을 제시한 문건에 그대로 표현되어있다.

6) 기윤실의 주장은 각종 공청회, 토론회자료집, 스포츠신문백서, PC통신에 게시된 의견, 이와 관련한 일간지등 잡지기사를 참고하였다. 특히 인용된 부분은 유니텔 토론실(go discuss)의 기윤실 관련 게시물에 의존하였다.

7) 우리나라 학설과 판례는 대체로 음란이란 "그 내용이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반 보통인', '성욕을 자극', '성적 흥분을 유발',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함', '성적 도의관념에 반함'이라는 온통 모호하고 다의적이며 불확정개념으로 이루어진 음란성 기준은 급격한 사회윤리의 변화와 다양하고 상대적인 가치관이 혼재하는 오늘날에도 거의 수정되지 않고 우리 법원에서 수십년간 유지되고 있다.

음란성에 대한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며, 다분히 사회윤리적인 판단이 개입된다. 도덕적 가치에 대한 판단에는 어떤 보편타당한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양하며, 또 무수히 중첩되어 있는 변수에 따라 한 개인에 있어서도 가변적이다. 

8) 포르노의 영향에 대한 이론은 크게 카타르시스 모델에 입각한 무해론과 모방이론에 입각한 유해론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포르노의 규제, 억압이 더 많은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으로 미국의 존슨위원회(1970)와 영국의 윌리암스 위원회(1977)에 의해 대표되며, 후자는 포르노규제의 완화가 더욱 심각한 해악을 가져온다는 가정에 입각한 미즈위원회(1986)에 의해 대표된다(더 자세한 것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1992),「음란물의 법적규제 및 대책에 관한 연구」를 참조). 

그러나 이들 위원회의 연구는 제한된 실험대상과 한정된 조사기간, 통제불가능한 여러 변수로 인해 음란물의 법적규제근거가 될 수 없다. 단지 음란물에 대한 특정나라의 특정시대 사람들의 '성표현물'에 대한 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여론조사에 불과하다. 음란물의 영향에 대한 깊은 탐구는 심리학 등의 흥미로운 한 분야일수는 있지만, 애초에 미완의 연구를 감수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9)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자유론>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결국에는 전체사회의 해악이 됨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견발표를 침묵케하는데에서 발생하는 해악의 특수성은 현세대와 차세대를 포함한 전인류의 행복을 강탈한다는 사실과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보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교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만일 그것이 틀린다면, 진리가 오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과 더욱 선명한 인상을 상실하게 되는 엄청난 혜택의 손실을 입게 된다." 

10) 대법원 1995.2.10. 선고, 94도2266 판결. 이 사건은 소설가 조동수의 자전적형식의 소설 <꿈꾸는 열쇠>의 음란성여부에 관한 사건이다. 

11) 음란성의 판단기준으로서의 보통인은 통상의 성인이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수치심이 없거나 수치감정이 지나치게 예민한 자를 기준으로하여 음란성을 판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이재상,「형법각론」, 박영사, 1991, 585쪽)고 한다. 

물론 사회공동체내에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정도의 명백한 도덕적 일탈자를 그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겠으나,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정도의 평균인의 성적 감수성이란 어떤 것인가. 아예 그러한 측정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불확정 개념은 그 정의를 위해 부연설명을 할수록 더 애매해진다. 동어반복이상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