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BBS의 회의적인 글만으로도 남한에선 감옥행


◁편집자주▷ 1996년 9월 북한 잠수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언론사와 국민들은 그들이 무장간첩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한 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고 일부 언론에서는 지면에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PC통신공간에 제기했다는 이유로 한국정부가 한 개인을 구속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 정부가 통신공간을 '국민 감시와 규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사건이며, 또한 정부가 주장하는 정보화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 사건이 국외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제공해 주었는지를 알기 위해 외국신문을 번역하여 싣었고 그리고 구속된 윤석진씨의 재판결과를 같이 싣는다.
 

BBS의 회의적인 글만으로도 남한에선 감옥행
Skeptical Computer Note May Put Seoul Man in Jail
남한정부는 보안법을 새롭게 강화하다.
S. Korea Cites Newly Toughened Security Law
By Kevin Sullivan
Washington Post Foreign Service
Monday, January 13 1997; Page A01
The Washington Post
켈빈 설리번 워싱턴 포스트 외신
1997년 1월 13일 월요일 page A01
워싱턴 포스트

서울 -- 지난해 9월 북한이 잠수함으 로 29명의 무장선원을 침투시킨 이후 에 윤석진씨는 남한의 한 컴퓨터 게시판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아마도 그들은 우연히 남으로 떠밀려왔을 것이다." 라고 27세의 윤씨는 썼다. 처음에 남한정부가 잠수함 선원들을 간첩들이라고 발표했을 때 이를 의심하면서, "나는 의문을 제기해야만 했다. 정말로 그들이 무장한 군인들이었는지를," 그는 남한정부가 최근의 (북한의) 동향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불길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국민들이 믿게끔 속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들 제시하면서 그 글을 썼다. 그러한 의견을 표현한 대가를 윤씨는 비싸게 치르고 있다. 남한정부는 그의 집을 급습해서 그의 컴퓨터 디스켓을 압수하였다. 검찰은 그를 1년6개월형에 처할수 있도록 구형 판결은 이번주에 내려진다.

윤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지 않고 있는 사람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란 남한의 민주주의와 아마도 가장 대치되는 측면으로서, 북한을 지지하거나 격려하거나 찬양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하고 있다. 매년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가고 있다.

1960년대 초기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남한은 군사정권에 의하여 통치되어왔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법이 그 군사독재시대의 흔적이라고 얘기한다. 그 당시에는 전경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때렸고, 최루가스가 법을 집행하는 표준적인 도구였다.

두 주전에, 김영삼 대통령은 국내 감시 기구인 안전기획부에 대한 법률을 강화하는 권력을 부여하였다. 후에 매우 비난을 받은, 집권 여당만이 참가한 새벽 6시의 비밀국회에서 야당국회의원 없이 정족수를 소집하여 강화된 보안법을 통과되었다.

또다는 하나의 의제는 새로운 노동법이었는데, 그것은 노동조합원들을 격노시켰고 그래서 수십만의 노조원들이 파업중에 있다. 자동차공장과 조선소가 휴업중이며 국내 생산 차질액이 10억불을 넘고 있다.

파업의 지도자인 권영길씨는 그 두 법안이 서로 관련되어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직장노조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 노조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고 보안법으로써 파업을 없애고 노조지도자들을 잡아들이는 수단으로서 이용하려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권씨와 많은 다른 비판인들은 은밀한 방법으로의 보안법의 통과가 남한이 지난날의 권위주의적인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국내 간첩 감시기구에 수사와 심문에 대한 증가된 활동영역을 제공함으로써 김영삼은 그 기관이 어떻게 정적들을 탄압하는데에 이용되었는가를 잘 아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대처하는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 김은 지난주에 자국내의 TV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은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우리의 나라를 지킬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30년만에 처음으로 군부출신이 아닌 사람으로서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된 김은 주장하기를, 연설의 자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한은 그 수도의 30마일 북쪽에 위치한 중무장된 공산집단의 끊임없는 위협으로부터 삶을 영위하기위해 국민이 지불해야할 대가라고 했다. 그는 말한다 --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 그가 이전에 안기부에 대해 성문화시켜놓지 않았던 점들과 또 몇가지의 제약들이 그 법안을 국민들에게 더욱 이해시킬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을.

수백명의 남한 국민들이 매년 그 방첩법의 검은 그물에 걸려 체포되고있다. 94년에는 367명이, 95년에는 246명이, 그리고 지난해에는 464명의 사람들이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정부는 그 체포된 사람들이 북한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남한 정부에 직접적인 해를 끼친 사람들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새롭게 더욱 강력해진 보안법이 단순하게 정부정책에 반대를 하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북한을 지지했다고하여 체포할 것이고, 사무실과 가정을 닥치는 대로 수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에 법원이 윤씨를 이번 주에 석방한다 해도, 그는 그의 생각을 cyberspace 에 표현했다는 이유 만으로, 이미 거의 3달 동안을 감옥속에 갇혀 지낸 것이다. 그의 가족과 옹호자들은 그의 구속에 격분했고, (우리) 미국의 민주 우방인 대한민국이 북한으로부터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막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생각의 자유까지도 제한하는 것입니다." 라고 윤씨의 어머니 정기자씨는 말했다.

국가의 보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가보안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근본적인 인권과 자유가 제한된다면, 무엇이 민주주의 이겠습니까? 북한과 남한이 다른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라고 인권문제를 주로 다루는 서울의 한 변호사 장수영씨는 물었다.

그의 기자회견에서, 김영삼은 그 자신이 80년대에 야당 정치인이었을 때 국가보안법 남용의 "아마도 최대의 희생자"라고 상기시켰다. 그는 전두환 정권당시에 고문받고 이년동안을 가택연금 당했다. 그는 그의 어릴때의 사진이나 종이들을 모두 압수당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와같은 전제 정권의 희생자로서, 나는 악법의 제정을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김은 말했다. " 나는 그 법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개정할 것으로결정했습니다."

김은 그 개정이 최근의 두가지 "놀라운" 사건 - 잠수함 침투 사건과 작년 9월 연세대에서의 거대한 학생 시위 -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김은 그 사건들이 북한의 남침욕구가 더욱 커지고 있고 북한의 간첩이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6,000 명 이상의 학생들이 연세대 시위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요구하는- 에서 체포되었다. 정부는 그시위가 남한의 사회질서를 어지럽힐 목적으로 직접적인 북한의 지휘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 체포된 사람들 중에서, 190명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국가 안보에 대한 그 민감성을 증명하듯이, 정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법에 의해 수감되었는지는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시위에 참가했던 연세대 학생 단체의 사무실에 앉아 학생들은 김의 강화된 보안법이 안기부가 그들을 자신들 마음대로 괴롭힐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학생들은 그들의 전화가 도청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보안법이 남한정부의 전복을 기도하는 사람들 외에도 단순히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남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인터뷰에서 그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기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중의 한명이 말하기를, " 만일 당신이 우리의 이름을 쓴다면, 그들은 우리를 잡아넣을 것이다."

서강대학교의 교정에서 학생회장인 노일식군은 그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그는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해 단지 제한된 정보만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사회체제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기부]가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노군은 말했다. "정권에 의해 세뇌당하기 보다는, 나는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에 노출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북한에 대한 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허용받기를 원합니다. " 노군은 전국의 학생들이 3월에 학교가 개학을 하면 이 새로운 보안법에 대항하여 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충돌이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체포될 것입니다." 라고 노는 말했다. " 그러나 결국에는 이 나라의 손실입니다."

그러는 동안, 윤씨는 서울의 감옥에서선고를 기다리고 있며 앉아있다. 검사들은 그들이 완고한 형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BBS에서의 포스팅외에도, 레닌의 것을 비롯한 다섯권의 공산주의 철학서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책들은 서울의 서점에서 구할수 는 것이다.

특파원 이금현씨가 이 보고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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