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과 민간화된 검열

◁ 편집자주▷ CDA법 위헌 판결로 인터넷 검열 논란의 새로운 국면을 맞은 미국은, 최근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들이 국가에 의한 검열의 돌파구이냐, 새로운 규제냐를 두고 다시 논쟁 중이다. 특히 PICS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나 넷스케이프 등 거대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 검열의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 하는데, 이런 '자본에 의해 민간화된 검열'이 국가에 의한 규제보다도 오히려 더욱 위험하다는 주장이 있어 소개한다. 인권영화제조차도 허용하지 못할 만큼 경직된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히 멀리 있는 화제들이기는 하지만, 이 글이 여러분에게 과연 검열이란 무엇이며 자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뜻에서 요약 번역했다. 이 글을 쓴 쎄스 핑컬스타인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MIT 학생연합(MIT's Student Association for Freedom of Expression)'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원문은 http://www.spectacle.org/896/finkel.html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과 민간화된 검열

Internet Blocking Programs and Privatized Censorship

쎄스 핑컬스타인(Seth Finkelstein)

1996년 7월, 브록 믹스와 데클렌 맥쿨래프(Brock Meeks and Declan McCullagh)는 싸이버와이어 디스패치(CyberWire Dispatch)에 실린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는 글에서 대중적인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바람직하지 못한' 자료들이 보이지 않게 막는 소프트웨어)의 불미스런 비밀을 폭로했다. 이 프로그램들이 '포르노'나 '음담패설'을 막는 프로그램으로서 많이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인 제한 범위가 훨씬 광범위하였던 것이다. 분명, (프로그램의 작동 기반인) '불쾌한 내용' 리스트에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자료들에 관한 것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프로그램들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뉴스그룹으로부터 동물수호단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이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MIT 학생연합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WWW 페이지 중 분류와 등급(Labeling and Rating)에 관한 섹션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경악스럽기는 했지만, 이러한 사태는 예견되었던 것이다. 전자 커뮤니케이션에 족쇄를 채우는 것에 대한 논의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시각에서, 사회적인 고립 상태에서 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나는 이를 '네트 자유주의적'(net.libertarian) 사고방식이라고 부른다.) '정부에 의한 것은 나쁘고 민간화된 것은 좋다'라는 식의 시각은 복잡한 사회 시스템에 관한 고려나 검열을 행하는 기제로서의 민간화된 부분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좀더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검열에 관해 정의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검열'은 거칠게나마 '정보에 대한 정부의 억압'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이 내가 '자유주의적'인 정의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정의 중에서 가장 제한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다음의 내용들도 주의깊게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a) 정부의 수행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 - 교묘하거나 간접적인 것은 검열이 아니라는 것.

b) 정보에 대한 억압은 전면적이고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 주변적인 사용을 허용한다면 이는 검열이 아니라는 것.

이런 식의 태도들이 검열에 대한 토론에서 너무 자주 등장한다. 검열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하는 것이 다소 불필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검열'이라는 용어를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이 곧잘 뒤따른다.

검열을 수행하는 방식은 노골적인 것으로부터 교묘한 것(안보이는 정부의 외압 등)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통신품위법(CDA)은 대단히 노골적이었다. 이는 위법 행위에 대하여 2년 이하의 징역을 처하는 충실한 형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노골적인 검열도 세부적으로는 유의미한 간접적 효과들을 발휘한다. '명백하게 불쾌한 성행위나 성기를 묘사'하는 것(상당히 광범위하고 모호한 금지 행위)이 그 자체로 범죄라고 되어 있지는 않다. 핵심 규정은 그런 자료를 미성년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범죄라는 것이다. 문제는 '소수가 사용할 수 있도록'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공공 대중을 제한할 수 있고 어떠한 범위에서건 모든 배포를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실제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제한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반검열주의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직접적인 유죄는 아니지만 효과적으로 거의 완전한 금지 상황을 창출하는 조건적인 제한에 대하여 그 교활한 교묘함에 주목하기 위하여 다시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동 보호'라는 표현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보다 더 문제인 것은, 이런 특정한 간접적 언급이 바로 정부 권력의 순수한 행사를 상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정법상의 노골적인 적용만이 정보에 대한 광범위한 억압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간접적인 효과에 주목하자. 다양한 차단 프로그램이나 분류 기준도 이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이런 다양한 형태의 시스템을 '민간화된 검열'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회사, 유통 단체, 등급제 등의 민간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민간화되어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이들은 정부 권력으로부터 권력과 권위를 위임받았다. 주(state)단위의 검열 권력 행사와 그 결과까지의 과정에도 궁극적으로 정부의 은밀한 외압이 존재한다. 구체적인 실제 세계에서 이런 시스템은 징역형 등의 행정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공포와 깊숙히 묶여 있는 것이다. 이는 필라델피아 통신품위법 재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http://www.cdt.org/ciec/의 5-10-96일자]

실제적인 세계에서 사법부의 누군가로부터 분류 기준을 따르거나 몇가지 차단 프로그램을 다룬다면 징역형을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당장 이 시스템의 사용에 동의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차단 프로그램과 분류 제도의 정치학과 연관이 있고, 시류에 영합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정부 권력에 대항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추세와 관련이 있다. 민간화된 검열의 지지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너를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라고 말한다.(이것이 진정 행정부에 의한 검열의 '대안'인가?) 정부에 의한 검열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리는 이미 법률을 통과시켰고,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감옥에 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은 정부의 위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논쟁에서는 언제나 이 부분이 걸렸다. "이는 정부의 권력, 정부의 위협, 정부의 지배, 총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관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 "그러나 차단 프로그램과 등급제는 민간의 행위이고 따라서 검열이 아니다"라는 말들이 꼭 따라다녔다.

네트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에 의하면, 사람들은 정부를 두려워하고 지긋지긋해하지만 사업은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정부'의 이미지는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위협스런 난폭자', 약탈을 일삼는 특별기동대 따위의 것들이다. 만일 잘 차려 입은 (정부)관료의 비즈니스라면 결코 자유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공포'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면 거기에는 정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눈 앞의 사물이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동 심리와 비슷하다. 각도가 틀리더라도 더이상 나빠지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검열의 의미에 관해 가장 고지식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조차 '민간의 요소'들을 고려해 볼 만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검열의 수행이 민간화될 때 규제상의 효율성은 다소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 그 범위가 광범위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차단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로 돌아오면, 그것이 진짜로는 공공에 대한 사기일 뿐 아니라 구역질나는 상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통신품위법 옹호론자들은 통신품위법에서는 건전한 통신 자료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소위 '대안적인' 해결인 차단 소프트웨어는 법보다도 강력하게 바람직한 내용들을 보장한다고 한다. 멤피스(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98)의 개발자와 같은 프로그램의 설계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목표에 반대할 수 없고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해 말만 꺼내면 법적인 한계도 없이 편견적이고 정치적인 기제가 작동된다. 사이버패트롤(역주: 차단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의 자유를 위한 연맹이나 소프트웨어 특허에 반대하는 단체, 저작권에 관한 이용자 권리를 '군사적이고 과격론자'들의 것으로 여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사이버시터가 '성정체성'(Sexual orientation)이 'sex'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성에 관련한 것으로 판단할 줄도 몰랐다.

그러나 사실 이런 종류의 기만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54년의 희극법을 보자. 표면상으로는 혐오스런 희극을 방지하려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그 분위기는 어쩐지 사회적인 히스테리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3) 경찰, 판사, 정부 관료, 명성이 있는 기관은 결코 기존의 권위에 누가 되는 방식으로 나타나서는 안된다.

이는 다른 종류의 혐오이다. 여기서 후대에 비슷한 사고방식에 의한 검열이 청소년의 타락이라는 그 낡고 똑같은 이유를 들어 페미니스트 정보, 게이나 레즈비안 자료, 혹은 그저 '기존의 권위에 누가되는' 것들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는 사태가 예견되는 것이다.

전자적 정보의 자유에 관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어떠한 기관이 정부의 행위에 대한 반대자로 상정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조심해서 보아야 한다. 정부는 제소하고 의무를 지우고 심지어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안 보이는 정부의 위협이 가해지고 민간화된 방식으로 검열이 행해질 때, 법적인 대응은 거의 불가능하고 책임을 부여하는 것도 어려우며 광범위한 시스템이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차단 소프트웨어는 검열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며, 또다른 종류의 검열이다.